아버지 칠순잔치 1990년 6월6일 아버지 칠순잔치때 찍은 비디오를 다시편집했다..28년전 모습이다. 응암동 백년산에 있는 백년회관.. 이모와 외숙모는 고인이 되었다.. 단체가족사진.. 보나가 10살.. . 회고록 2018.02.11
국민학교 시절. 어려서 나에 별명은 맘보 였다..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불렀다..어른들이 한곡 불러봐~ 시키면 주저하지 안코 김삿갓 노래와 신라의 달밤을 불렀다..나에 18 번지 노래였다..뒷간에 가면 강화극장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가 흥겨웠다..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아래로~~이시절 이노래가 유행했나 보다..지금 찾아 보니 노래 제목이 청포도 사랑 이다..학교에 가면 점심시간에 우유와 옥수수빵을 먹을수 있었다..미국놈들의 무상원조로 준것이었다..일본놈도 나쁘지만 미국놈도 나쁜 개슥히들이지..DDT 분말약을 옷속으로 등뒤와 앞에 뿌려주곤 했지..그때는 이와석해 벼룩 빈대등이 엄청많았다.그많던 이가 언제 사라졌는지 알아? 연료가 전환 되면서부터야..나무만 때다가19공탄 무연탄을 때기 시작했지..이때가 1965년쯤 일걸.... 회고록 2018.02.01
군대 시절 하사관 동상 앞에서 하사관 학교는 하사관을 만드는 학교다..보병과 기행하사 후보생들이 교육를 받는다..단풍하사라고 부른다..왜냐하면 하사계급장 위에 꺽인부분이 노란색이기 때문이다..기행 후보생들은 한달정도 보병훈련을 마치고 각자 특과 학교로가지만 보병 후보생들은 육개.. 회고록 2018.01.30
군생활 이야기 병기학교를 졸업하고 이틀간 휴가가 있었다 .70년대에 영호남 고속도로가 생겼다.종로1가에 삼화고속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군장가게에서 신형 군모자를 사고 따블백을 메고 전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처음으로 고속버스가 생겨 안내양도 있었고 사탕과 과자를 승객에게 나눠준다..전.. 회고록 2018.01.24
육군병장 만기제대. 전역증서(1971.1.12~1973.11.22) 35개월복무 만기전역 처음부터 육군에 간건 아니었다. 육군은 땅개라고 부르고 육군에가면 고생하고 월남파병 차출도되니 죽을수도 있다.그러던중 육군 3사관학교 1기생 모집 광고가났다..이걸 작은 외삼촌한테 보여주니 가지말라고 한다..작은 외삼촌은 포병.. 회고록 2018.01.21
계보도(系譜圖) 증조부 이창길...아쉽게도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다만 황해도 해주에서 크게 장사를 하고 지주였다는 것만 구전으로 전해진다. 할아버지 사진..(1883.6.4~1953.12.22)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자세히나와 있다.. 이창길 (증조부 .전주이씨 효령대군파))의 3째.. 회고록 2018.01.12
보릿고개 겨울이 가고 봄이오면 동무들과 국화리 고려산 자락으로 갔다.삽과곡괭이를 들고가서 칡부리와 뚱단지 마등을 캤다..알칙은 달고 씹는맛이 좋았다..먹고나면 입술이 꺼멓게 변해 서로 쳐다 보며 낄낄대며 웃곤 했다..한찬수가 국화리에 살고 있었다..감나무에 때까치새가 집을 지어 알을.. 회고록 2018.01.11
그시절 그추억 2 1959년 9월 추석때 상륙한 사라호 태풍은 그위력이 대단했다..엄청난 폭우와 바람으로 지붕이 다 날라가고 개천이 넘어 물바다가 됬다..대부분의 집들이 초가지붕 이었다..우리집도 마찬가지로 초가지붕 이었다.일년에 한번씩 지붕을 바꿨다.그때는 창후리 사는 큰외삼촌이 일꾼과 볏.. 회고록 2018.01.10
그시절 그추억... 국민학교 5학년때 전등사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다. 좌로부터 필자 ,김동호, 고도병.. 나에 집은 성말내 꼭대기에 있어 강화면 시내가 다보였다.강화는 고려시대 임시수도 였다.그래서 4대문이 있고 성곽이 축조 되어 있다..그래서 성말내라는 지명이 생긴듯하다..우리집 바로밑에는 감시.. 회고록 2018.01.09
출생 나의 생년월일은 1950년 12월3일(음력 10월24일) 이다. 경기도 강화군 강화면 관청리 330번지 성말래 (동네이름)에서 새벽에 출생했다..아버지 이종화 ,어머니 임순덕 사이에서 태어난 9남매중 여섯째로 태어났다.엄마는 결혼이후 내리딸만 넷을낳고 다섯째로 아들을 낳았으나 국민학교 5학년.. 회고록 201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