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군생활 이야기

번개맨 이충원 2018. 1. 24. 11:33

병기학교를 졸업하고 이틀간 휴가가 있었다 .70년대에 영호남 고속도로가 생겼다.종로1가에 삼화고속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군장가게에서 신형 군모자를 사고 따블백을 메고 전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처음으로 고속버스가 생겨 안내양도 있었고 사탕과 과자를 승객에게 나눠준다..전주에서 논산으로가는 버스를타고 여산서 내렸다.여산서 육군제2하사관학교 까지는 4km 가 조금 넘었다..따블백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 학교 정문에 도착해서 특명지를 위병소애 보여주니..후보생이 아니고 기간병이라고 한다..다행히도 하사차출병이 아니다..본부중대에 인계되어 대기병 생활을 며칠했다..하사관학교전에는 이곳에서 문맹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고 한다..요즘은 중졸자도 군면제가 되지만 그당시는 많이 배운놈들은 요리조리 다빠지고 무학자 국졸 이런사람들이 우선 징집되었다..그러면서 위정자들은 이런 소문를냈다..군대안가면 병신이라는등, 장가도 못간다,취직도 못한다..이건 완전 개소리다..면서기 아들만 되도 군에 안갔다.





대기병 기간중 보병훈련을 1달간 또 받았다..훈련을 마치고  병기학교 동기인 구봉재와 함께 병기과에 배치됬다.. 내주특기를 제대로 찾은것이다.. 병기장교는 ROTC 중위였다..말뚝 장교가 아니고 제대를 6개월 정도 남겨두고 있었다..영외거주 하고 가끔 고향집에 갈때는 AR소총 꼬질대를  30개정도 가져갔다..충청도 어느 해안가가 고향인데 꼬질대로 무언가는 잡는 도구로 유용하게 사용된듯 하다..병기과에는 창고2개와 탄약고가 있었다. 나는 화기창고에 배치됬다..우리사수는 제대를 7개월정도 앞두고 있었다..논산군번 1198...마지막 와리바시 군번이었다..



                                      육군제2하사관학교 병기과 근무시절.


병기창고는 아침저녁으로 바빴다. 후보생들에게 교육용 화기를 빌려주고 반납받고 이것이 주임무였다..후보생들 고장난총을 고치는것도일과였다.창고에는 고장난 화기로 가득찼다..병기장교가 나를 불러 명령했다..고장난 화기를 모두 고쳐라.동기생 구일병과 나는 모든 부속을 총동원해서 10일동안 고장난 화기들을 고쳐놨다..특히 3.5인치 로켓포가 모두 고장나 있었다..병기장교가 흡족해 하며 칭찬을 했다..후보생들은 M1 소총을 쓰고 기간병들은 카빈소총과 M1이 지급됬다..M1 소총은 빈총으로 격발시 공이가 잘파손됬다..이것을 공구 하나로 금방 바꿀수있다.

본부중대 내무반은 짬봉으로 소대를 구성했다..군수과,수송과,병기과에 근무하는 병사들로 소대를 구성했다.항상 쫄병이 식사 당번이었다..식기 30개를 냉수에 닦고나면 손발이 얼어붙었다.특히 돈지를 이용한 음식을 먹고난 식기는 정말닦기가 어려웠다.4월인데도 함박눈이 펑펑 쏫아지고 있었다..이때가 1971년 4월이다.

밤마다 일석 점호가 끝나면 고참들이 집합시켜  식기검사 병기검사를 해서 생트집을 잡는다..모두 수입불량이라고 ..그리고 타작을 시작한다..걍 이유없이 맏았다...쓰벌놈들,, 5파운드 10파운드 곡괭이 자루로 빳다를 치고 발바닥을 때렸다..그당시 내무반에는 난로가 하나있었다. 연료는 석탄가루를 황토흙에 섞어 사용했다..석탄 야적장까지 가서 단가에 석탄을 채워 둘이서 들고오는길이 작난이 아니었다..얼마나 무거운지..그리고 불을 피우고 나면 화력이 좋다.. 고참새끼가 취사장에가서 멸치와 고추장을 얻어 오란다..항고 를 들고 취사장에가서 눈치를 보고 애기하면 몇대 얻어 터지고 멸치를 얻어온다..멸치찌개를 끓여 고참께 주면 낮에 몰래 사다가 감춰둔 막걸리를 지들끼리 쳐먹는다.수송부 근무자들이 밖에 나갔다가 막걸리를 한통(20L)사온다.술판이 끝나면 밤12시가 넘는다..이때쯤 군번순으로 집합 소리가 들린다..줄빳다를 친다..많이 맏고 많이 때렸다..이렇게 군기가 쎄니 어디가서 말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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