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군대 시절

번개맨 이충원 2018. 1. 30. 11:02




                                            하사관 동상 앞에서


하사관 학교는 하사관을 만드는 학교다..보병과 기행하사 후보생들이 교육를 받는다..단풍하사라고 부른다..왜냐하면 하사계급장 위에 꺽인부분이 노란색이기 때문이다..기행 후보생들은 한달정도 보병훈련을 마치고 각자 특과 학교로가지만 보병 후보생들은 육개월간 이곳에서 훈련을 마치고 하사로 임관한다..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는지 군기가 엄청 쎄다..보병 41기(?)는 고산 유격장에서 훈련을 받다가 5명이 전사했다..이때가 1971년 6월경..



완주군에 있는 고산 유격장은 유명하다..전사자중 1명은 물에 빠진 전우를 구하려고 물에 들어갔다가 안타깝게 함께 죽었다..병역의무를 마치기위해 강제 징집된 청년들이 고된 훈련을 받다가 모두 죽은것이다.얼마나 유족들은 기가막히겠는가?나는 본부중대 일등병 쫄병 시절이었다.전사자들은 연병장에 안치되고 밤에는 천막앞에서 보초를 섰다.3일후에 장례식이 치뤄지고 운구까지해서 앰브런스에 실었다..울부짖는 유가족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장례를 치른후살벌한 분위기 속에 군사재판이 열리고 학교장은 전방으로 전출되고 유격대장은 전역하고 해당조교는 영창가는 신세가 됬다..그후로 훈련이 조금 느슨해졌다..구타도 안하고...ㅉㅉㅉ








학교에서 기간병 생활은 후보생보다 고생은 덜했다..병기장교가 ROTC 장교에서 말뚝 대위로 바꼈다.강경 사람으로 간부후보생 출신이었다.오는날부터 군기를 잡기 시작한다. 병기창고를 검열하고 정리가 안됬다고 무조건 빳다를 친다..육군 대위가 일병에게 빳다를...완전 씨발놈이네..이때부터 반발이생겨 시간만 보낸다..좃통수 불어도 시간은간다.국방부 시계는 꺼꾸로 도냐? 시간이 지나니 상병 계급장을 달았다.저녁 점호시간에 맞춰 후보생중대에 병기 검열을  나갔다.중대장들이 잘봐달라고 양담배 한보루를  준다..이때부터 담배 피기 시작했다..

가금씩 일요일엔 병기과 전원이 함께 외출을 했다.취사장에서 1종과 부식 담배등을 따블빽에 담고 미륵산 밑에 있는 낭산저수지로 갔다..탄약담당 이병장이 TNT 1 파운드와 수류탄을 가져와 저수지에서 터트리면 (일명 깡질) 저수지 물위에 고기가 허옇게 떴다.동네 사람들이 빠께스 가져나와 한통씩 주워간다...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수없는 일은 그때는 자연스럽게 했다.주민들이 신고도 안하고 같이 놀았다..가져간 쌀을 동네 사람께 부탁해 놓으면 매운탕과함께 쌀밥 그리고 막걸리를 신나게 먹었다..부대로 돌아오는길에는 군가도 힘차게 불렀다.

찬바람이 불고 초겨울이 되면 후보생 탈영병이 많이 생겼다.야간 경계 훈련을 나가면 총과 탄띠를 그자리에 벗어 놓고 탈영을 한다..그러면 본부 중대에 비상이 걸리고 탈영병 잡으러 간다.대부분 십리도 못가서 잡히고 만다..장기 하사관들중 진급도 안되고 쉽게 말해 꼴통들이 보수교육을 들어왔다..매주 토요일 마다 연병장에서 아침에 분열식을 갖는다..여기서 불합격하면 그중대는 외출 외박이 없다. 당연히 꼴통 중대는 불합격을 맞았다.하루종일 분열연습을 중대장이 시켰다.이에 반발해서 밤에 집단 탈영을 했다..이것을 막기위해 논산훈련소 헌병대와 병력까지 지원받아 탈영을 진압했다..실탄까지 갇고있어 위험한 상황이었다.토요일 마다 완전군장에 10km 구보는 정말 힘들었다..후보생들은 공수구보를 했다..공수구보 어떤건지 해본 사람은 안다..

첫휴가를 12개월만에 갔다.쫄병때는 짬밥 살이 붙어 70kg 까지 나갔다.병장을 달고 제대를 몇개월 남겨두고 병기장교가 나를 경비소대로 전출시켰다..씨발놈이네.. 경비소대에 가서 위병근무를 했다. 토요일은 후보생 가족들이 면회를 왔다..


                                                 위병소 근무시절


위병소 앞에는 야산이 있었고 어떤 부모는 며느리를 데리고 와 이야산에서 씨를 받아 갔다.어떤여자는 외상값을 받으러왔다. 차용증을 보여주며  xxx 중사를 찾아 달란다.차용증 내용이 가관이다 씹차용증이다..씹도 외상으로 하나...ㅋㅋㅋ

제대 날자가 닥아 오니 살이 빠지기 시작해서 60 kg 까지 빠졌다.본부중대 목수병에게 제대기념으로 바둑판을 부탁했다..군소리안하고 바둑판을  만들어 주었다.개구리복으로(예비군) 갈아입고 전역신고를 마쳤다.이때가 1973년 11월22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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