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그시절 그추억 2

번개맨 이충원 2018. 1. 10. 12:03



1959년 9월 추석때 상륙한 사라호 태풍은 그위력이 대단했다..엄청난 폭우와 바람으로 지붕이 다 날라가고 개천이 넘어 물바다가 됬다..대부분의 집들이 초가지붕 이었다..우리집도 마찬가지로 초가지붕 이었다.일년에 한번씩 지붕을 바꿨다.그때는 창후리 사는 큰외삼촌이 일꾼과  볏단을 가져와 지붕을 고쳐주곤 했다..밭가운데 있는 초가집 한채에는 안방과 건너방 방두개가 있었다..일곱식구가 잘려면 너무좁아 밤마다 이불 쟁탈전이 벌어졌다..그시절에는 왜 그리도 추운지방안에 있는 요강이 얼기도 했다..요강이 항상넘쳤다..눈도 많이 내렸다.엄마가 지어준 솜바지를 입고 한겨울을 났다..아침 저녁으로 시내를 내려다 보면 초가지붕 굴뚝에서 밥짖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연료는 오직 나무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산에가서 나무를 해다 때니 산은 벌거숭이가 됬다..가끔씩 나도 지게를 지고  북산에 가서나무를 했다..어떤때는 나무뿌리를 캐기도 했다.북산 한쪽에 할아버지 선산과 넓은 밭이 있었다..춥고 배고픈 시절 이었다..그래도 우리집은 형편이 좀나은편이 었다. 아버지가 전기회사에 다니니까. 그러나 많은식구가 먹고살기 힘들었다..점심은 주로 죽을 먹었다. 김치를 썰어넣고 밥한사발을 넣어 물과함께 끓이면 10명은 먹을수있다..동네 아주머니들이 점심때면 우리집으로 모인다..이유는 단한가지 죽한그릇 먹기위해서다..성말내는 지대가 높아 물이 없다..우물이 없어 국민학교 운동장 옆에 있는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집에서 500m 쯤 떨어졌지만 평지가 아닌 언덕길을 물지게를 지고 올라가야하니

보통 힘든일이 아니었다.가을에 목욕하면 겨울지나고 봄이되야 목욕을 했다.살갖에서 때가 밀렸다.머리에는 석해가 있고 때때로 옷을 벗어 벼룩과 이를 잡아야 했다.그당시 강화군에는 공중 목욕탕이 없었다...다행이 빈대는 없었다.물이 귀하니 엄마는  빨래를 한거번에 모아서 여자중학교앞에 있는 빨래터에가서 해가지고 왔다.마당에 줄을 메고 빨래를 걸어놓으면 빨래가 동태처럼 얼어 버렸다..아버지가 인천에 출장 가셨다가 스케이트를 사오셨다..강화에서 3번째로 스케이트를 갖게됬다..모두가 썰매를 타던 시기다.고시기 벌판에서 의시대고 거만스럽고 자랑하며 스케이틀 탔다..동무들이 한번 타보자고 줄을 섰다..지금도 스케이트를 탈수 있다.

강화면에는 개천을 경계로  웃장과 아랫장이 있다..장날이면 촌에서많은 사람들이 장보러 온다.가끔씩 웃장 에서는 군에서 영사기를 가져와 공짜로 영화를 보여준다..아랫장에 오치과과 있다.저녁마다 흑백테레비를 창문에 걸어 놓고 보여준다..그당시 강화군에는 5대 정도 텔레비가 있었다..프로 레스링중계가 있는날은 오치과앞 마당에 사람들이 모여 테레비를 봤다.김일 선수의 박치기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신나게 함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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